3. 주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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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섬 이야기 마당
한섬공동체의 소식과 추억을 쌓는 곳입니다. 댓글과 의견 표시할 때는 성도의 예로서 함께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1. 말씀 이야기
설교를 잘 이해하고 싶거나, 삶에 적용하기 원하는 분은 꼭 참여하세요~
592. 목회 이야기
교회에 안팎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적어봅니다.
173. 주보 이야기
주일예배 주보 및 섬김 소식, 광고 등을 올립니다.
284. 사진 이야기
교회의 기쁘고 아름다운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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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말씀 이야기사도행전 15:12-21 본문은 예루살렘 공회라고 합니다. 초대 교회가 자라가면서 이방인들의 구원의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무리들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모세의 율법인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베르도는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율법)를 제자들(이방인 제자들)의 목에 두려고 하느냐’ 하며, 이들과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보다 본질적으로 본다면, ‘모세의 할례가 구원의 조건인가?’입니다. 이 때 야고보가 등장합니다. 본문의 야고보는 신약의 야고보서를 쓴 예수님의 형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는 12장에서 헤롯에 의해 순교했습니다.) 야고보는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베풀어야 하지만 4가지(우상 제물 먹지말고, 음행하지 말고, 목매어 죽인 것을 먹지 말고, 피를 멀리하라고 정리합니다. 본질을 지키면서 다툼을 끝내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Win Win의 판결이었습니다. 이 ‘합의된 기준’을 각 성에 전하는 것이 2차 선교여행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갈등 가운데 야고보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19절의 의견이라는 단어는 원어로는 판단하다. 심판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단순히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판단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한마디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19)’고 결정을 내립니다. 왜냐하면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셨던 것을 가장 곁에서 목격했던 형제였고, 누구보다도 더 많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의 말한마디가 교회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본질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라는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에 이 일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갈등을 직면합니다. 어찌 보면 교회가 시끄럽고,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그 어려움은 성장하는 성장통이 됩니다. 문제를 만나면 본질에 더 집중하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1. 말씀 이야기사도행전 15:1-5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죄와 사망이 우리의 주인이었습니다.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예수께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3:16-17)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님 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구원은 나의 노력,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에베소서 2:8-9)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여러분,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지 않고, 생명의 성령의 법의 지배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예수를 우리의 인생의 주인으로 삼으며,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순환한다’고 하나요? 오늘 본문에서 당시의 어떤 사람들이 예수의 복음 외에 모세의 법 곧 율법 중 할례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정리한 것이 15장의 예루살렘 회의입니다. 요즘 '신율법 시대'에 사는 느낌입니다.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종교적인 열심과 장식, 표현들을 통해서 스스로 위안과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모든 것이 ‘신율법’입니다. 십자가의 본질은 사라지고 모양만 남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주인이 바뀌게 됩니다. 예수의 종에서 죄의 종이 되고 맙니다. 주님이 그러했듯이 비본질 즉, ‘율법(신율법)’과는 평생 싸워야 합니다. 교회는 율법이 아니라, 복음, 곧 십자가의 은혜의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움직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늘 내 인생의 주인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의 인생의 주인인 예수님을 따라사는 하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월 15일 ‘신율법을 경계하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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