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신성과 인성을 모두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1:27), 바다를 잠잠하게 하고(2:10), 병을 고치시고(5:29-30), 죽은 자를 살리시는 등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신성의 최고봉은 죄사함의 권세입니다(2:10). 죄사함은 성령으로 잉태하사 세상에 오셨고, 죄가 없으심에도 본디오 빌라도에게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심판하러 오시는 구세주의 신성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을 보여주면, 기적적인 모습, 역전시키는 모습, 대적하는 모습, 영적인 모습만을 강조하며 따라가는 것은 예수님의 반쪽만을 믿는 것입니다. 또 신성을 잘못 이해하면 영을 강조하면서 신비한 쪽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능력의 한계나 고통받는 현실이 무시되고, 율법적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구별된) 사람을 사는 중요한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 함께 살면서 매우 인간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잘 이해하도록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4:33-34). 당시 쓸모없고 노동력으로만 여겨졌던 아이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주셨습니다.(9:35-37).힘든 하루를 보낸 이들을 배려하셔서 쉬게 하셨습니다(막 6:30). 예수님은 사람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갈 4:4-5). 예수님은 인간의 슬픔을 공감하시며 눈물을 흘리는 분이셨습니다(요 11:35).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 감정이 흔들릴 정도로 두려움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14:36).
우리가 우리의 형편을 아뢰고 기도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상황과 필요와 소망과 고민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감하시며 위로하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눈을 들어서 주위의 동료들이나 이웃들을 보십시오. 누구에게나 혼자는 감당하기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우리 이웃들의 눈높이를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되고, 그들의 한숨이 나의 한숨이 되고, 그들의 애절함이 나의 애절함이 될 때, 그 때 우리의 일터와 삶의 현장이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주님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바쁜 시간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공감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위로와 새 힘을 얻습니다. 나의 동료들이나 이웃들과도 공감하는 마음과 기회들을 주시기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내려놓고 위로를 주시면서, 저도 주님 주시는 위로를 함께 얻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