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9-14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으로 슬퍼하고 울고 있는 이들에게 전했습니다. 열한제자들에게도 전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시골로 가던 두 사람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하지만, 모두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믿지 않은 이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누가는 이 장면을 ‘눈이 가리어져서 알아보지 못했다’(눅 24:16)고 기록합니다. 주님은 ‘믿음 없음’ 그리고 ‘마음이 완악’하다고 꾸짖으셨습니다. ‘믿음 없음’은 충분히 믿음을 가질 만한데 그렇지 못함을 말하고, ‘완악하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명확한 증거 조차도 거절할 만큼 완강히 거부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주님은 왜 이렇게 제자들을 심하게 꾸짖으셨을까요?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복음 곧 하나님 나라가 왔다”(막 1:14-15)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로 마무리됩니다. 결국 마가복음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꾸짖으신 것은, 나를 사랑한다고 슬퍼하고 울지 말고, 나를 사랑하면, 일어나라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일터나 일상에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을 거부당하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게 복음을 전했던 폐혜를 고스란히 당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말과 행동이 다른 전도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구분된 삶’이 아니라 ‘구별된 삶’으로 모습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구별된 삶은 삶의 목적과 그 방법이 세상과 다를 때 나타납니다.
경영자로서 사업가로서, 교사로서 공무원으로서, 또 교회에서 목사로서, 장로 집사 권사로서 일하는 방법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부모로서 자녀로서 사랑의 목적과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직장과 일터와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직장 상사나 대표나 돈벌기 위해서 눈치 보지 않고, 하나님 영광 위해서 일하는 일터의 성도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일터와 삶의 현장에서 살아내도록 도와 주십시오. 출근해서 맡겨진 일에 충성할 때에, 현실의 벽에 좌절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 주신 복음을 전하며 믿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게 하옵소서. 일상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께서 업무를 지시하시고 지혜를 주시고 힘주시고 능력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