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13-22
오늘 본문은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40년 동안 못걷던 사람을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의 간증 이후의 일입니다. 그들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예수의 부활과 예수 이름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선포했습니다. 관리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매우 놀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이름으로는 누구에게도 전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은 아주 유명한 말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하면서,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4:20)며 그들의 요구를 거부합니다.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어떻게 하지 못하고, 위협을 한 후에 놓아줍니다. 묵상하면서 구약의 아모스 선지자가 떠올랐습니다.
구약의 아모스 선지자는 남유다 드고아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로 북이스라엘의 벧엘에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모스 선지자를 싫어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그러한 그들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암 3:4) 하나님의 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은 선지자는 침묵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어떤 핍박이 오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 이야기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고,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두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이 임하자, 베드로와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 못걷는 사람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일으켰기 때문에 그 사실을 전해야만 했습니다. 오늘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만큼 주시는 성령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