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3-9
정채봉 시인이 쓴 ‘만남’이라는 시에는 만남을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비유해서 이야기합니다. 만남에는 생선 같은 만남, 꽃송이 같은 만남, 건전지 같은 만남, 지우개 같은 만남 그리고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각각의 만남 중에는 가장 잘못된 만남, 조심해야 하는 만남, 비천한 만남, 시간이 아까운 만남과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시인은 독자들에게 지금 어떤 만남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회심 전의 바울은 자기 주도적이며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의’로 꽉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홀연히 하늘로부터 오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과 만나게 됩니다. 눈은 뜨고 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다가, 아나니아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과 바울의 만남은, 시인의 시와는 맞지 않지만, 지우개 같은 만남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바울의 과거의 인생을 지우개처럼 지우고, 새로운 인생을 쓰게 하셨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가 ‘흑역사’입니다. 없었던 일로 해버리고 싶은 정도로 좋지 않은 과거의 일을 말합니다. 바울도 자신의 과거 흑역사를 죄인 중의 괴수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다메섹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완전히 변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 중심적인 흑역사를 지워버리시고 새로운 역사로 인도하십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흑역사는 주님을 만나야 지워지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그려가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수만번을 스치며 살게 됩니다. 그 중에는 얼굴만 봐도 기쁘고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사람이 있지만, 시간의 지우개로 박박 지우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지우고 싶은 일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는 지울 수 없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찾아소셔서 그의 흑역사를 지우시고 새로운 역사를 쓰게 하셨습니다. 이 시간 짧은 시간을 내어서 기도합시다.
“바울의 모든 흑역사를 지우시고, 선교의 역사를 쓰게 하신 주님이 오늘 나의 모든 흑역사를 지우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Aelbert Cuyp, The Conversion of St. Pa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