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8-18
반려동물(이제는 애완동물이라고) 중에 강아지는 ‘댕댕이’, 고양이는 ‘냥이’라고 합니다. 키우는 사람들도 1500만명이 넘습니다. 직접 키우지는 않지만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반려동물을 보는 즐거움을 찾는 이들(뷰니멀족)도 있습니다. 사료비부터, 접종비, 의료비, 의상비 등 비용 뿐만 아니라, 놀아주고 목욕시키고, 대소변 치우는 데 시간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키우는 사람을 ‘댕집사’, ‘냥집사’라고 부릅니다.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고니온에서 추방당한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루스드라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나면서부터 한번도 걷지 못했던 사람을 만납니다. 사울은 그를 유심히 보고, 그에게 고침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칩니다. ‘네 발로 (똑)바로 일어서라’(10). 그러자 그가 일어날 뿐 아니라 걷기도 했습니다. 기적적으로 한 영혼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 일행이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는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왔다’고 합니다.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제우스 산당의 제사장을 데려다가 제사를 지내려고 합니다. 루스드라 지역에는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사람의 모양으로 이 지역을 방문했는데, 사람들이 영접을 안해서 홍수로 멸망시켰다는 전설 때문에, 이들이 긴장한 것입니다.
주객전도(主客顚倒)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인과 손님이 뒤바뀐다'는 뜻입니다. 못걷는 사람이 걷는 기적은 성령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표적입니다. 즉 기적의 주체이신 성령님과 그 기적의 이유, 목적을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에 집중합니다. 마치 유대의 모든 절기가 가진 의미는 상실한 채, 그 행위를 율법으로 지키며 살아가는 많은 유대인들을 보는 것과도 같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이 땅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받으면서, 기도의 응답을 받으면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시고, 그 분과 동행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을 잊으면 하나님이 아니라 종교적인 활동이나 생활이 됩니다. 오늘도 일터와 가정과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하루되시기를 측복합니다.
'댕댕이 제주 전세기'에 탑승해 제주국제공항으로 향하고 있다.